나의 생각

▣ 아버님 전상서

jbm0427 2008. 1. 23. 21:59

 


1997년 6월 23일은 나에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되어버렸다.

그동안 보훈 대상자로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시고

항상 웃으며 살아가시던 아버님께서 큰 병세는 없으나 허리가 아프고,

입 안쪽에 약간 염증이 있으며 눈동자를 보면 황달이 시작된 것도 같았다.

그래서 종합병원에 입원하여 종합진찰도 한번 받아보고,

치료도 한 후 돌아오자며 보훈병원에 입원하셨는데

당뇨가 심하여 병을 치료 못하고 그만 73세의 연세로 눈을 감으실 줄이야..


아버님은 어린시절 경제적인 어려움과

6.25동란으로 인한 부상생활 그리고 어려운 생활고를 겪으셨으나

말년에는 분재 가꾸기를 취미로 즐기시면서,

관공서나 친분이 있는 개인 영업장에 분재를 진열해 주시고

지나칠 때면 들려 구경하시며 즐거워 하셨던 아버님이셨고

더욱이 한양 조씨 양경공파의 문중일에 몰두하시며

조상 섬기는데 남다른 분이셨다. 세상을 그렇게 사시다 가시었다.

지금 이 불효자의 한은,

아버님이 마지막 병고를 겪으실 때 열일을 제쳐두고 병원치료도 제대로 못해 드린 것이

눈물 지도록 마음이 아프다는 것이다.

왜 그 해 봄철엔 그렇게도 바빳는지.

아버님께서 허리가 안 좋으시다며 개인병원으로 치료를 다니셨는데..

효도하는 일엔 왜 그렇게 인색한 것이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면 부끄러운 마음뿐이다.


사실 5월 4일은 내가 태어나서 자랐던

염주마을의 어린이와 어르신들을 모시고 제2회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내가 대회장을 맡았으나 두 번째로 치룬 행사라 준비 상황을 챙기지 않으면 않되었다.

행사당일 아버님께서는 운동장에 들리시어 웃으시며

금일봉이 든봉투를 하나 건너 주시고 병원간다며 다녀 가셨는데..

그리고 돌아가신 하루 전날인 6월 22일은 전남 완도군 일원 앞바다에서

허경만도지사님과 군수님등 기관장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6회 전라남도지사배 전국 선상바다 낚시대회가 열렸었다.

나는 그 대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었기에 대회의 준비와 진행을 맡았으므로

병원 출입과 대회준비의 양쪽일 어느 것 하나 잠시도 소홀히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회 준비로 한창 분주한 6월 9일 병원에 입원 한 후부터

오전에는 아버님곁에 오후에는 연합회 사무실에서 일을 보면서

하루하루를 초조한 마음으로 보냈다.


대회 이틀전인 금요일 밤에는

아버님께 대회를 끝내고 일요일 저녁에 뵙겠다고 인사를 드리자

아버님께서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시며 그 동안 아무일이 없을테니 염려말고 잘 다녀 오란다.

토요일 오전 완도읍으로 내려가 일요일 대회가 끝날때까지

수시로 전화연락을 하였으나 병세가 우리들 생각과는 달리 악화되어 중환자실로 옮기시고,

서울에서 형제들이 내려와 올라간단다.

전화로 동생이 "형 왜 아직도 안 올라와"하고 울먹일때는

내 마음도 어떻게 할지를 몰라 마음을 한군데 두지 못하고,

산란기에 산란 장소를 찾지 못하여 헤메는 붕어처럼 안절부절하며 대회장 주변을 서성거렸다.

선상 낚시대회는 다른 대회와 달리 선수들은 바다로 배낚시를 떠나고,

임원들은 휴식을 위해 각자 흩어져있어 대회장 주변은 썰렁하여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거닐 수밖에 없었다.


나 혼자의 개인적인, 아니 집안 일로 인하여

전국에서 모인 선수들에게 질서가 없어 대회가 엉망이었다는 말을 들을 수가 없어

몇 시간 남지 않은 대회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광주에 도착하여 담당의사 선생님과 면담하고 난 후 같이 입원해 계신

아버님 친구분과도 이야기를 나눈 결과

아버님께서 살아서 병원문을 나설 수가 없다는 것을 느꼈을 때는

눈물이 한 없이 나왔다.

병원 밖 정원에 앉아 참을려고 애를써도 쏟아지는 눈물을 흘리며

그 동안 불효했던 일과

조금만 더 생존해 계실 수만 있다면 효도할 수 있을텐데 하는 마음등

만사가 교차하며 인생 무상함을 다시한번 느꼈다.


마음의 준비를 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서울에 계시는 작은아버님과 누나와 광주의 사촌형님에게 연락하여

대사를 치룰 장소와 장지등을 타협하기 위하여

다음날 아침 일찍 만나기로 전화통화를 하였다.

전날 대회장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

찌뿌듯한 몸을 씻고 잠을 청하였는데

아침 일찍 어머님께서 전화를 해와 서둘러 병원에 도착하니

 아버님께서 간밤에 세번 죽을려다 살았다며 나와 동생을 맞아 주셨다.

어머님은 모처럼 집안 일을 하시기 위해 나가시고

뒤늦게 도착한 집사람과 함께,

누워만 계시기가 불편하시다며 앉았다 누웠다하시는 아버님과

넷이서 이야기하면서 한시간 동안 병간호를 하던 중

갑자기 운명을 달리하고 마신 것이다.

아니, 인간의 생명이 이렇게 허망할 수가 있을까?

그저 홀연히 가신 저 세상에서나마

왕생극락을 누리셨으면 하고 기도해 드릴 뿐이다.

2001년 6월

기일 4주년을 맞이하면서

불효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