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식 제사 지내는 법
1939년 교황 비오 12세가 '유교 문화권의 조상 제사는 민속적 관습일 뿐 가톨릭의 교리와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라고 발언한 뒤 천주교에서는 나름의 방식으로 제사가 허용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조선시대 때 들어온 서학(천주교)에 대한 박해의 중요 원인이 될 정도의 문제였다. 유교 국가인 조선에서 제사를 금지한다는 것은 단순히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국시인 유교 자체를 뒤흔드는 중대한 행위였기 때문이다. 물론 천주교 박해의 실질적인 원인으로는 황사영 백서 사건 등등으로 (모든 천주교인들이 황사영 같은 과격파인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실제로 나라를 들어 엎을 가능성이 있는 집단임이 드러난 점도 중요하게 작용했겠지만, 천주교의 교리가 유교의 가르침과 심각하게 충돌한다는 점도 '윤지충 신줏단지 소각 사건(진산사건)' 등으로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서 당시의 신자들은 천주교의 가르침이 유학의 가르침과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더 풍부한 이해를 돕는다고 반박한다. 물론 이 의견은 깨끗하게 묵살당했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통해 허용된 천주교의 제사는 전통적인 제사 형식과 약간 차이가 있다. 우선 지방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지방을 쓰더라도 지방에 신위(神位)란 말을 쓰지 않고 그냥 이름과 함께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라고 쓴다. 그리고 제문을 올리는 등 조상"신"에게 바치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 제례의식들은 죽은 이를 위해 하느님에게 바치는 기도(연도, 위령기도)로 대신한다. 물론 집안에 따라, 특히 다종교 가정(?)인 경우 다양한 차이가 있기도 하다. 어쨌건 핵심은 천주교에서 인정하는 제사는 어디까지나 조상에 대한 추모와 그들의 평안을 하느님에게 비는 기도라는 선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다.(사실 공자도 제사의 의의는 돌아가신 조상에게 예를 갖추고 살아있는 친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는 예식이라고 정의했다. 공자의 어록이나, 그 이후 발간된 그 어느 유교 경전을 봐도 제사가 조상귀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조상귀신과 소통하는 행사라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적혀있지 않다. 즉, 유교식 제사에서 조상"신"을 모시는 형식으로 된 의례를 삭제해도, 유교 관점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말.)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그러하지만 간혹 이 선을 넘는 경우도 있는 법이기 때문에 천주교식 제사의 핵심이라 할 수 있겠다.
여담이지만 천주교의 공식 미사통상문에서는 미사를 '제사'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말씀 전례 후 이어지는 성찬 전례의 시작이 '봉헌(헌금)'인데, 이 헌금을 마치고 이어지는 '예물 준비 기도'에서 신자들이 다음과 같은 합송을 한다. "사제의 손으로 바치는 이 제사가 주님의 이름에는 찬미와 영광이 되고… (후략)" 왜냐하면 천주교에서는 미사를 구약 시대에 사제들이 양으로 속죄 제사를 바치던 게 신약 시대에 들어오면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대체된 하나의 희생 제사로 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성체는 제삿밥과, 성혈은 음복주와 어느 정도 통하는 면은 있다. 게다가 트리엔트 미사는 사제가 신자들을 등지고 미사를 집전하니 정말로 동양식 제사가 연상될 수 있다. 물론 구체적인 의미는 전혀 다르지만(…).
요즘에는 명절에 제사를 지내거나 지내지 않거나 상관없이, 위령미사를 봉헌하는 신자들이 많다고 한다. 위령미사는 다른 말로 연미사나 죽은 이를 위한 미사라고 부르며, 죽어서 연옥에 간 이들을 기억하며 그들이 천국에 하루속히 갈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한 목적으로 봉헌하는 미사이다. 조상 제사를 드리더라도 위령미사를 봉헌하고 위령기도를 바치는 것은 가톨릭교회의 고유한 전통이어서 교회는 이를 적극 권장하고 있다. 원하는 날로부터 20일 이전(또는 수일 전)에 본당 사무실에 비치된 예물봉투를 사용하여, 미사의 종류와 지향(고인의 이름 혹은 목적), 일시 등을 조정 기록한다. 예물 액수의 규정은 없으나, 차례 때의 제물 값을 고려할 때 성의껏 드려야 한다. 비신자를 위해서도 연미사를 봉헌할 수 있지만, 사제가 그 이름을 공지할 수 없다. 천주교 수원교구 최윤환 암브로시오 몬시뇰은 "미사 때 지향은 신자와 비신자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도 개방돼 있다"면서도 "다만 비신자를 위한 연미사를 공식화하긴 어렵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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