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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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bm0427 2008. 1. 26. 09:45
 

한양조씨 (漢陽趙氏)

  오늘날 우리나라 274성(姓)중 인구 순위로 趙氏는 일곱 번째의 대성(大姓)인데 그중에 두드러진 본관은 우리 한양조씨로 조씨 중 가장 많은 인구와 인물을 배출한 한양 조씨의 시조 지수는 덕원부 용진현에 세거한 사족의 후손으로 고려조에서 첨의중서를 지냈다. 그 후 후손들은 조선이 개국하자 한성으로 이거하여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고,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고려조에서 조순대부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모든 문헌이 실전되어 거의 선대와 벼슬하던 왕조 및 생존 연대는 상고할 수 없고, 묘소의 소재도 확실하지 않다.
   
본관 및 시조의 유래
 

한양조씨의 시조 조지수(趙之壽)는 덕원부 용진현에 세거해온 사족의 후예로 고려조에 첨의중서사(僉議中書事)를 지냈다.
그후 후손들은 조선이 개국하자 한성으로 이거하여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고, 많은 명신과 유현을 배출하였으므로 본관을 한양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 왔다.

가문을 빛낸 인물로는 휘(暉)의 아들 양기(良琪)가 1281년 부원수가 되어 일본정벌에 참가했고 21세때 합단의 침입을 대파한 공으로 원나라 세조로부터 금포와 옥대를 하사받았다.
양기의 아들 돈(暾)은 1356년 쌍성수복 작전때 공을세워 예빈경이 되고 이듬해 평양에 침입한 홍건적을 대파한 후 판사농시사, 밀직부사에 오르고 1375년 삼중대광으로 용성군에 봉해졌다.

돈(暾)은 아들 4형제를 두었는데 모두 벼슬에 올라 가문을 빛냈다.
그 중 맏아들 인벽(仁壁)은 동북면 원수로 왜구를 토벌하였고 정화공주와 결혼하여 이성계의 매부가 되었으며 용원부원군에 봉해졌다.

조선조에 와서 한양조씨의 가문을 더욱 빛낸 사림파의 영수 광조(光祖)는 개국공신 온(溫)의 현손으로 14세 때 어천도 찰방으로 부임하는 아버지 원강(元綱)을 따라가 희천에 유배중인 김굉필에게 글을 배웠다.
중종 때 대사헌에 있으면서 신진사류인 30대의 소장학자들을 요직에 안배하는 한편, 훈구파를 외직으로 몰아내는 등 과격한 개혁을 단행하여 마침내 훈구파의 반발을 야기시켜 남곤, 심정 등이 주동한 기묘사화에 피화되어 능주에 유배, 배소에서 죽음을 당했다.

그 밖의 인물로는 중종때 대사간, 형조판서 등을 지내고 청백리에 녹선된 위한(緯韓)과 그의 동생으로 시문에 능한 찬한(纘韓)이 유명했다.
장령 중여의 아들 종저(宗著)는 사학, 천문, 산수, 의학에까지 박통하여 문명을 날렸으며, 충정공 인옥(仁沃)의 아들 뇌는 예조참판을 지내고 효행으로 이름을 날렸다.
또한 계유정난때 안평대군 일파로 몰려 아들과 함께 죽음을 당한 순생(順生)과 그의 아들 명(銘), 시인 수삼(秀三), 화가로 이름난 중묵(重묵) 등이 유명했는데, 수삼(秀三)은 현종때 문장과 시로써 여섯 차례나 중국을 왕래하여 명성이 높았으며, 서예와 중국어에도 능통했다. 그의 손자 중묵(重묵)은 특히 초상화를 잘 그렸으며 희원 이한철과 더불어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화가로 알려졌다.

이렇게 조선조에서 세도를 떨친 한양조씨는 근대에 와서도 많은 인물들이 배출되어 나라와 가문을 위해 공헌했다.
인원(仁元)의 아들인 병옥(炳玉)은 대학생으로 한인회, 흥사단 등에 가입하여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해방이 되자 한국민주당을 창당하여 경무부장으로 치안유지에 힘썼다.
그후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으며, 후에 대통령에 입후보하였으나 신병으로 미국 육군병원에서 영면하였다.

청록파 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지훈(芝薰)도 해방 후부터 6.25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단의 선구자로 민족적 정서운동에 앞장섰으며, 종신토록 대학교단에서 문학을 피력하였고, 사회활동에 이바지함이 지대하여 후에 그를 기리는 시비(詩碑)가 세워졌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한양 조씨는 남한에 총 64,881가구, 273,40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성촌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두일리
충북 음성군 금왕읍 유촌리. 유포리
황해도 연백군 석산면 건릉
충북 청원군 강내면 연정리
황해도 온정면 상운리 언묵
충남 당진군 면천면 자개리
황해도 도촌면 한사리
경북 안동군 서후면 저전동
함남 이원군 동덕면 청동리
   
항렬도(行列圖)
 
세(世)
항렬자(行列字)
적 용 예
22세
鍾 (종)
載 (재)
趙 鍾 o
23세
元 (원)
允 (윤)
趙 o 元
24세
炳 (병)
昺 (병)
趙 炳 o
25세
行 (행)
衡 (형)
趙 o 衡
26세
成 (성)
誠 (성)
趙 成 o
27세
熙 (희)
紀 (기)
趙 o 熙
28세
慶 (경)
庸 (용)
趙 慶 o
29세
新 (신)
章 (장)
30세
廷 (정)
聖 (성)
31세
揆 (규)
葵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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